스쿱업(ScoopUp) 2020
중간지점
박소현, 박영진 2020. 6. 6 - 6. 21
스쿱업
박소현, 박영진 2020. 6. 6 - 6. 21

박영진에게 체감할 수 없었던 공간의 무게와 크기는 컴퓨터 화면 안에서 무게 없는 덩어리가 된다. 이제 한눈에 들어오는 가상 의 질량을 이리저리 굴려본다. 직접 움직이고 측정하며 감당할 수 있게 된 허상을 실제 공간 안에 가건축 한다. 이 과정에서 가 상과 실재 사이의 공백은 메워지고 의도적으로 덜어진 여백은 임시 공간이 된다.
박소현은 주변의 풍경을 가리며 혹은 담으며 등장하는 ‘부유하는 물덩이’를 포착한다. 높이 솟아올랐다가 사라져버리는 움직 임은 그것을 따라가는 붓질이 되어 가벼운 흔적으로 남는다. 그 흔적의 물덩이는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풍경, 색감에 의해 그 존재감이 부각되기도, 배경으로 흡수되기도 한다.
<스쿱업>은 □안에서 박소현, 박영진 두 작가가 떠낸 ■, 떠내고 남은 ▣에 대한 전시이다. 두 작가는 ■와 ▣의 중간에서 한 스쿱 떠내고 다시 붓기를 반복하며 □를 다져나간다. <스쿱업>은 유동적인 □를 잠시 굳혀 놓은 상태이다.
박영진은 ‘중간지점’을 정방형 공간으로 인식한다. 공간의 중간지점을 찾아 천장부터 바닥까지 세로로 축을 잇고, 그 축을 기준 으로 공간을 45도 회전시킨다. 네 귀퉁이에 쌓인 모래 더미는 회전된 공간을 유추하게 한다. 빨간 공백과 흰 여백이 맞닿아 만 들어내는 허상은 우리가 들어와 있는 실제 중간지점의 밀도를 감각하게 한다.
박소현은 빨간 모래로 만들어진 임의의 거푸집을 건네어받는다. 가볍게 퍼올린 물덩이는 공간 안에서 선으로 흐르고 면으로 펼쳐진다. 화면 안에 등장하는 ‘부유하는 물덩이’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 까슬까슬한 모래 더미, 붉은 색감을 머금으며 투 명하게, 반투명하게, 불투명하게 나타난다.
중간지점은 지금 비어있으면서도 가득 차 있다. 두 작가의 ■와 ▣가 겹겹이 층을 이루며 교차한다. 안과 밖, 위와 아래, 앞과 뒤 그 사이 공간의 경계에서 잠시간 건져 올린 장면, □를 감각하게 한다.

일렁이는 알갱이들을 더듬어가며
박소현, 박영진, 《스쿱업》, 중간지점, 2020.6.6.-6.21.

곽현지

 《스쿱업》은 중간지점의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갔을 때, 바닥의 붉은 모래를 밟지 않아야 한다고 인식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전시는 일종의 공간에 대한 조형적인 탐구 방식을 보여주는데, 이를 통해 박소현과 박영진은 상상해보지 않았던 공간 바깥의 공간을 풀어낸다. 
 박영진의 <rotating formwork>은 공간의 큰 뼈대를 형성한다. 작가는 중간지점의 가운데를 중심축으로 삼아 45도 회전시키고 그 결과로 사라진 공간을 붉은 모래로 형상화한다. 동시에 공간을 회전하여 생성된 새로운 4개의 모서리는 현실의 여백으로 전이되어 확장된 공간을 상상하게 한다. 전시 제목인 ‘스쿱업’처럼 한 스쿱 퍼 올리고 나면, 사라진 공간의 부분은 울퉁불퉁한 경계로 갈라져 안과 밖이 뒤집힌다. 새롭게 드러나는 빗면을 통해 부가된 공간은 보이지 않고 삭제된 공간만이 남기 때문이다. 네거티브한 오브제로 비가시적인 영역을 지시하는 붉은 색의 모래는 상상된 공간을 가르는 표면, 공간의 위와 아래, 스케일, 밀도와 같은 공간의 특징을 떠올리게 만든다. 
 공간의 네 모서리에 가설물의 형태로 굳어있는 박영진의 붉은 모래를 이어받아 박소현은 중간지점 안에서 유연하게 떠다니는 물조각을 표현한다. 작가는 45도 회전하여 새롭게 생성된 전시공간을 암시하듯이 전시장의 흰 벽을 비워놓으면서, 네 점의 <floating fountain>을 통해 가장 높은 지점에서 맑게 빛나다 빠르게 사라져버릴 물덩이를 포착한다. 박영진이 <rotating formwork>를 통해 중간지점의 단면을 보임으로써 다른 공간적 맥락과 무관하게 유영하는 공간으로 만든 것처럼, <floating fountain> 역시 중력을 거슬러 물방울을 허공에 세우는 동시에 이 지지체 역시 바닥에서 세워 새롭게 구획된 공간에 흩뜨려 놓는다. 회전된 공간 속에서 회화가 관습적으로 기대어왔던 벽면의 경계는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걸 수도 없고 (혹은 안팎의 경계에 간신히 걸려있거나) 다만 회전된 공간에 자유롭게 세워져 있는 어떤 회화 작품이 되어버린다.
 《스쿱업》에서 박소현과 박영진은 3D 모델링 프로그램인 스케치업을 통해 공간을 구성한다. 중간지점의 특징인 정방형(에 가까운) 공간은 만져보고 이리저리 건드려서 회전하는 상상을 발휘하기에 적절한 크기다. 두 작가는 중간지점을 전시공간 그리고 을지로에 위치한 한 상가건물의 일부라는 기존의 맥락에서 떼어내 추상적인 차원에서 공간을 투시하여 작품을 배치한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빨간 공백과 흰 여백이 맞닿아 만들어내는 허상은 우리가 들어와 있는 실제 중간지점의 밀도를 감각하게” (전시 서문 중 발췌)하는 것처럼, 현실의 공간이다. 두 작가의 작품의 규모와 작품 사이의 거리를 고려하면, 공간이 가지는 조건과 제약을 떠오르게 만든다. 관객을 압도할 정도로 절대적으로 큰 작업은 아니지만, 단출하고 크지 않은 공간에 작품을 위한 일정 거리와 눈높이가 다소 관습으로부터 어긋나있는 채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오로지 부분의 조합만을 볼 수 있다. 조감의 시선으로 자유롭게 작품들을 배치했던 기획 과정과 달리 실제 전시공간에서는 전체를 온전히 볼 수 있는 시선은 존재하지 않으며 표면을 더듬어가며 단면으로서의 공간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중간지점은 올해 2인 프로젝트를 공모했고, 《스쿱업》은 이 프로젝트의 세 번째 2인전이다. 4평 남짓 되는 정방형의 공간을 떠올려볼 때 여러 명이 작품을 선보여야 한다면 두 명 정도가 최적일지도 모른다. 2인은 혼자도 아니지만, 집단이라고 하기엔 서로가 서로에게 밀접한 관계이다. 투명한 물방울의 움직임과 하나의 형태로 굳어진 붉은 모래는 흡수되고 교차하며 서로를 향한 긴장감과 상호 참조, 대칭을 만들어낸다. <rotating formwork>는 비가시적인 공간과 가시적인 영역을 교란하고, 안과 밖의 경계를 응시하게 한다. 붉은 모래는 잘 고정된 개체처럼 보이지만 바스러지기 쉽고, 공간에서 가장 눈에 잘 띄지만 실제로는 배경의 역할을 수행한다. <floating fountain>에서 각기 다른 투명함을 가진 물조각은 잘 뭉쳐있어 작품의 크기에 따라 밀도있는 조각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 자체로 관객을 압도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찰나의 점들이다. 짧은 순간에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하는 물줄기는 군집되어 하나의 형태를 이루는 듯하지만, 다른 어느 순간에 어떤 물방울들은 흘러내린 채 표현되어 있다. 한편으로는 물조각만큼 선명한 물조각의 배경들은 물조각의 중심적인 위치를 흐린다. 물과 모래는 서로를 이어받으며 안과 밖을, 형상■과 배경□을, 단단함과 유약함 사이를 진동하며 가변적인 공간▣을 헤엄친다.
 짧은 순간에만 형태를 가지며 빛나는 물방울과 가설물의 역할을 하는 모래 알갱이처럼, 중간지점도 대도시의 어떤 ‘점’ 같은 것일지 모른다. 작품을 가동시키는 공간의 관념성은 어쩌면 중간지점이 물리적으로 인지되기 어려운 공간이라는 사실과 닮아있다.
 중간지점은 외부의 공간과 수상하게 경계 지어진 미술공간이다. 여기서 수상하다는 것은, 자기 확신이 없으면 경계를 넘어 안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중간지점은 접근성 좋은 저층, 눈에 띄는 간판, 내외부를 연결하는 통유리 등 내부공간에 외부에서의 가시성을 부여하는 많은 요소와 거리가 멀다. 1층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까지 올라오다 보면 지표로부터 붕 떠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관객은 비물질적인 무엇인가(이를테면 스마트폰 같은)를 매개하는 방식으로 중간지점을 인식할 수밖에 없다. 공간 자체는 너무나 촉지적이지 않으면서 지나치게 주변과의 맥락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필요에 따라 서울의 구석구석에 안착한 작은 전시공간이 대개 그러하듯 공적인 삶으로부터 분절된 공간이며, 미술 전시를 향유하는 특정한 몇몇 사람들에게만 개별화된 경험을 제공한다. 고립된 공간 속에서 문을 닫고 나오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전시는 그렇게 시작되고 끝나버린다. 
 이렇듯 중간지점이 가지는 공간의 특징은 전시의 출발점이 된다. 《스쿱업》은 전시공간이 위치한 다른 건축물의 맥락을 무시하고 □ 그 자체로서 시작했지만, 어떤 지점에서는 외부적 조건을 연상하게 만든다.
 중간지점이 어떤 분리된 개체처럼 느껴지는 것은 중간지점에는 정말로 전시를 위한 공간밖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미술관의 이상적인 공간 구성은 화이트큐브이고, 엄밀히 말하면 원룸이다. 그러나 화이트큐브는 생활공간과 분리된 이상화된 공간 속에서 새하얀 벽에 걸릴 작품들을 위해서 다양한 기반시설을 요한다. 중간지점은 전시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만 남아있다는 점에서 진실로 원룸이며 집이자 방이다. 신생공간이라 불리는 2010년대 중반에 등장한 몇몇 미술공간들도 특정 관객층만이 찾아가는, 대도시의 빈 공간을 유랑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한 손에 쥐어 이리저리 굴리고 회전시키기에는 부속들이 많은 공간이었다. 특별한 돌출부 없이 엇비슷한 길이의 4개의 변을 지닌 정방형 큐브인 중간지점은 주사위를 던지듯 쉽게 축을 변형하고 회전시킬 수 있다. 
 중간지점의 크기가 1인 가구가 거주하는 원룸의 최소 크기인 14㎡와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해볼 때, 4~5평 원룸을 단장하는 것은 큰 크기의 방에 비해 한계가 있다. 작품의 크기, 배치, 동선, 시야, 밀도 등의 문제들. 하지만 박소현과 박영진은 불완전한 작은 공간을 보수하고, 기획할 때의 고민거리를 유예시키고 공간 자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스쿱업》에서 보이는 공간은 관념의 층위에서 시작되어 현실 공간을 인지하는 것으로 끝난다. <floating fountain>과 <rotating formwork>의 오밀조밀한 간격이 만들어낸 동선의 끝에는 을지로 공간이 보이는 창문이 있다. 이 창문 사이로 투과하는 빛은 물과 모래를 은은하게 비춘다. 벽과 중력을 잃은 가상 같던 공간은 바깥의 풍경과 연결됨으로써 ▣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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